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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 작가론


감각계의 재편성-시간, 공간, 물질의 새로운 관계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세계의 근원은 무엇이며,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동서양은 막론하고 철학적 주제가 되어 왔다. 고대 서양에는 유한하고 물질적인 감각계와 대비되는 영원하고 비물질적인 세계를 탐구했다. 플라톤은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의 밖에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한한 물질적 세상은 불, 공기, 물, 흙의 네 가지의 기본 원소로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4라는 숫자는 자연을 이루는 근본적인 숫자로 보았다. 이를 근원으로 이 세계의 다양성을 완성시키는 기본적 숫자는 7이다.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나누고, 7개의 음, 인간의 일곱 가지의 죄, 신이 세계를 완성하는 시간 7일 등 7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세계를 완성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반면 동양은 전통적으로 숫자 5를 이 세계를 이루는 근본적인 수로 보았다. 다섯 방위(동·남·중앙·서·북)와 관련된 다섯 가지 근본 성질(목·화·토·금·수), 다섯 가지 방위와 성질을 나타내는 오방색, 그리고 다섯 개의 장기(오장육부), 다섯 개의 음(궁·상·각·치·우) 등이 세상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성질에는 음과 양이 공존하면서 결국 열 가지 성질을 갖게 된다. 10개의 천간은 갑은 양목(陽木), 을은 음목(陰木), 병은 양화(陽火), 정은 음화(陰火)순으로 나타난다. 이 열 가지 천상의 성질과 자·축·인·묘로 시작되는 열두 가지 지상의 성질의 조합이 60갑자이며, 그것이 또 다시 결합하여 시간과 공간, 천상과 지상, 개념과 실재, 인간 등의 세계를 이루게 된다. 이 성질들은 우주와 세계를 이루며, 무한히 순환하며 변화하는 운동을 이룬다.

윤송이는 이러한 세계관의 형식적 핵심들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그리하여 시간성, 공간성, 그리고 물질성의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한다. 작가는 가시적으로 동양적 형식인 오방색을 사용하는데, 새로운 축의 차원에서 그 상징성은 동서양을 넘어서 작가만의 고유한 상징성을 갖는다. 회화적 형태의 작품은 동양의 다섯 가지 근본 원리가 순환하는 무한성의 단면으로 구현된다. 마치 거대한 지층의 단면을 표본으로 시간을 읽어 내듯, 공간을 상징하는 캔버스에 일정한 시간 동안 오색의 물감이 번갈아가며 뿌려진다. 캔버스는 수평 혹은 수직으로 설치되어 수학적 공간의 x축과 y축을 이루며, 겹쳐진 물감을 통해 시간성과 물질성을 감각하게 한다. 창문에 빛이 들어오며 공간을 점유하듯, 평면적 캔버스 표면을 축으로 물감이 겹쳐져, 전방으로는 공간이 확장되는 동시에 표면의 후방에는 깊은 지층을 상상케 한다. 그 형상은 지층 혹은 지구의 멘틀 아래 단층 같기도 하며, 때로는 불규칙한 큰 변화의 시점 혹은 빅뱅의 순간 우주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듯도 하다.

조명이 설치된 평면작업은 고딕 교회의 스테인드 글래스처럼 빛으로 공간을 확장시킨다. 스테인드 글래스는 전자 미디어가 없던 시절 환영의 미디어이자, 초월적이고 관전한 신의 세계를 상기하게 하는 이데아 형상의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윤송이 작품에서의 빛나는 창은 우리나라 전통 창살문, 혹은 그보다는 최근 가옥의 미닫이 창문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스테인드 글래스가 어두운 교회에 영롱한 색상의 빛을 쏟아내면서 ‘이상적 세계’를 상상하게 한 것과는 달리, <Total eclipse, 2009>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빛이 사라진 세상에 스며 나오는 빛이 신이 죽은 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 같다. 그 실체는 실재적 세계의 원칙들인 시간성, 공간성, 그리고 물질성을 말한다.

그리하여 설치작업들에서는 실체적인 공간성과 물질성이 더 구체적으로 강조되어, 조금 더 현상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캔버스에 상징적으로 머물렀던 공간은 전시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회화의 관념적 공간에서 실제 시간이 흐르는 공간 안에서의 지각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The universe's credit rating, 2012>에서는 캔버스에 겹쳐져 층을 만들던 물감은 사라지고, 그 지층은 전시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공간에 새겨진 x축의 선들은 지층을 만들고 y축은 그 층들을 강조하며 시간성에 공간성을 더한다. 또한 선풍기의 바람은 그 고정된 개념적 공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돌아가는 팬은 그 흐름이 순환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2013년의 작품은 사운드를 이용했는데, 사운드 역시 순환하며 흘러감으로써 바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시점을 지난 평면작업은 좀 압축적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인공적 오방색에서 자연색이나 다양한 색상이 혼합된 무채색을 사용하며, 크로노스(Kronos)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으로 변화한다. <The Life, 2015>는 회색의 거친 표면 위에 단숨에 검정색의 물감을 뿌렸다. 그 흔적은 하나의 순간적 사건이지만 그 안에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영원성을 담고 있다. 배경이 되는 회색은 흑과 백의 중간, 즉 삶과 죽음, 선과 악, 시작과 끝, 안과 밖과 같은 대립적인 것을 통합하는 색이며, 그 위에 뿌려진 검정색은 오방색이 의미하는 모든 방위와 성질이 하나로 압축된 색을 의미하다. 삶이란 대립적인 것들이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는 시공간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이지만 복합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시간의 순환, 혼재된 시간과 공간의 순환성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국지적인 삶의 문제에서 나아가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의 인간의 시간, 궁극적 원리들이 조화를 이루는 순환적 시간을 바라보게 한다. 사고와 인지능력의 확장은 예술의 사명이자 오래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고전적 철학 주제를 현상학 이후 현대의 시각에서 재조직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윤송이의 작업은 인간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 더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세계를 탐구하려는 철학적 문제의식의 전개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기획, 미술평론 이수